요즘 이야기

세월호 기억하시나요

민나수 2023. 4. 1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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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도로 가는 청해진해운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군 맹골수도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및 승무원 29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영구 실종된 대한민국의 대형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안전불감증에 불러온 참사로 대한민국의 안전관리 실태를 여실이 

보여주는 사건으로 우리들 맘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당시 출범 2년 차였던 박근혜정부가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시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하여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집중되었다.

 

2008년 선박연령 규제 완화로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의 하야시카네선거

에서 건조한 페리선을 일본에선 운항금지된 노후선박을 세월호의 수입운항,

 

 

사주인 유벙언일가의 부도덕한 경영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부실한 선박관리와 

안전교육, 이를 방치한 승무원들, 이준석선장과 항해사의 판단 착오와 늑장대응,

그리고 그로 인한 시간지체, ' 가만히 있어라'라는 비상식적인 안내방송, 그리고

정부와 지자체등 잘못된 대처등 총체적 난국의 최악의 해난사고 인다.

 

사건당시 배안에는 차량 150여 대와 승무원 29명, 화물기사 33명을 포함 총 476명이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중 수학여행일정이 있던 단원고학생 및

단임교사가 포함돼 있다.

해운사발표에 따르면 오전엔 477명이라 했지만 오후엔 462명 이후 자정즈음에는

475명으로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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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이 반복되면서 사망자가 많이 발생된 것으로 

말 잘 듣는 학생들이 죽는 결과가 되어 안타까움과 공분이 더 컸다.

 

현장에 가장 먼 처 도착한 해경이 안내방송을 했더라면 좀 더 많은 인원이 구출되지

안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후에 최순실게이트로 인해 박근혜대통령이 탄해 되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명칭인 세월호는 시간이 흐른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었으나 유병언 회장이 직접

작명한 것으로 세월을 넘는다는 의미로 지어진 것으로 정정보도 되었다.

 

당초 600명 정도의 정원이었으나 후에 300여 명을 더 태우기 위해 뒤쪽객실을 추가

한 사실이 밝혀졌다, 객실을 증축하면서 기존보다 239톤이 증가하였으며 일본에서도 

개조하여 이미 5997톤이었던 처음배가 개조로 인해 828톤이 증가한 6825톤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세월호 사고 5년이지난 지난 2019년 11월 출범한 특별수사단(특수단)은 1년 2개 월간의

활동을 끝냈다.

앞서 특수단은 세월호 구조의 책임을 물어 해경과 박근혜 정부의 고위인사등을 조사,

법무부의 세월호의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법무부와 대검찰청을 압수수색했고, 당시 

국정원이 세 워러호 유족들을 사찰했다는 의혹등도 수사해 왔다.

하지만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해경 지휘부 구조책임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특조위) 활동방해 의혹 등 앞서 재판에 넘긴 사건 외엔 추가적인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대부분 의혹에 무혐의 처분을 내리며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알려져 당시 국민들의 울분을

샀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좀 더 철저하게 조사해서 잘못된 부분은 고치고 처벌해야 할 사람들은 처벌해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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